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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 타는 목마름으로

NOTE 2018. 4. 4. 19:18

김지하 -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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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한 김지하 시 선집으로서, 1부는 「타는 목마름으로」 등 24편, 2부 「황톳길」 등 20편, 3부 「산정리 일기」 등 12편을 싣고, 4부에는 「명륜동 일기」 등 산문 5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 시 선집은 발간 당시까지의 시를 대충 망라한 것으로서, 시인 자신의 감옥 생활을 바탕으로 한 고통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저 어둠 속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건너편 옥사() 철창 너머에 녹슬은 시뻘건 어둠/ 어둠 속에 웅크린 부릅뜬 두 눈/ 아 저 침묵이 부른다/ 가래 끓는 숨소리가 나를 부른다 …(중략)… 끝없이 부른다/ 창에 걸린 피 묻은 낡은 속옷이/ 숱한 밤 지하실의 몸부림치던 붉은 넋/ 찢어진 육신의 모든 외침이/ 고개를 저어/ 아아 고개를 저어/ 저 찬찬한 침묵이 나를 부른다/ 내 피를 부른다/ 거절하라고/ 그 어떤 거짓도 거절하라고”(「어둠 속에서」)에서 보이는 것처럼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견디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폭압적 정치상황 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고대하겠다는 신앙적 기다림은 표제시인 「타는 목마름으로」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중략)…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 시집은 『황토』에서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신앙적인 확신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 시를 원작으로 1980년대 초중반 당시 연세대 학생이던 이성연이 민중가요로 작곡하여 대학가를 중심으로 구전되어 민중가요가 널리 퍼지기도 하였다.


김지하의 원작시가 1970년대 후반 내내 출간조차 되지 못한 채 필사의 형태로만 전파되다가,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 의해 출간된 후 금세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는 등 오랫동안 금지된 반독재투쟁의 상징 같은 시였고, 이 노래는 이 시의 가장 절절한 구절을 소리 높여 통곡하듯 부르도록 작곡되어 있었던 것이 수용자들의 큰 반향을 얻은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조가 취약한 악곡을 노래운동 집단인 새벽의 작곡자 문승현이 기타와 올갠 연주의 장중한 분위기로 편곡, 결점을 보완하여 비합법음반 『민주주의여 만세』(민중문화운동협의회, 1985)에 수록하였다. 공연에서는 주로 이 편곡을 바탕으로 남성 독창자가 부르는 방식으로 연주된다. 『민주주의여 만세』 수록 버전에서는 2절의 마지막 부분 하행 선율을 상행 선율로 바꾸어 피날레의 느낌을 주도록 마무리했는데, 198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구전 과정에서 2절 마지막 부분에 ‘만세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4마디의 고음 선율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변형되어 불렸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타는 목마름으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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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