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cm 용기에 담긴 피 한방울로 260여가지의 질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고 발표했던 10조원 스타트업 테라노스가 긴 공방끝에 결국 사기극으로 최종판명이 났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18년 3월 14일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에게 주식사기 혐의로 50만달러, 우리돈으로 약 5억 3천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SEC는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에게 테라노스의 케이스를 교훈으로 삼으라며 경고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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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테라노스 사태를 중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변혁을 꿈꾸는 혁신가라면 그들이 소유한 '오늘의 기술'을 진실 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이 바라는 '내일의 기술'이 아니라." (SEC 성명서.2018.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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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테라노스의 사기극에는 숨은 공범자들이 존재한다. 바로 언론매체와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다.
홈즈는 딱 포춘지의 커버 감이었다.
젊고, 아름다우며,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고결한 이단아'였고, 스티브 잡스를 존경해 검은색 터틀넥 옷만 입고다녔다.
주사바늘을 무서워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알약 크기의 혈액 진단기구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탄탄한 창업 스토리까지 갖췄다.
실제로 포춘지에서 가장 빠르게 홈즈를 발굴해내 그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2014년 6월경 포춘지 커버에 홈즈를 싣고, "헬스케어 혁실을 가져올 여인"이라고 띄웠다.
그리고 그녀를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실리콘밸리의 IT매체들 또한 포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홈즈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기술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고, 테크크런치 기자조차 그녀와 인터뷰 하며 자신의 피를 맡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기술이 진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았고, 단지 그녀를 칭찬하기만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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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또한 그녀의 거짓말을 알고도 비호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무지했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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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지의 수석편집장 로저 팔로프는 다음과 같은 반성문을 썼다.
"2014년 기사를 쓸 당시 한 방울이 아니라 정맥채혈로 대량의 피를 채취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혈액 양이 충분치 않을 때 종종 그렇게 한다며, 하지만 매주 더 진화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나는 그 해명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업비밀이려니하고 넘어갔다. 물론 비밀은 비밀이었다. 구린 비밀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최소한 이 대화내용이라도 기사에 포함시켜야 했다. 그때의 잘못을 후회한다." (로저 팔로프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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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에도 핵심기술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녀가 주장하는 기술에 대한 입증할 수 있는 논문이나 데이터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라노스의 이사진에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등이 포진하게 되었고 투자자들은 그녀의 유명세를 부채질 해댔다.
유명 벤처투자가 마크 안데르센은 자신이 뽑은 혁신기업가 중 첫 번째 여성 창업자라며 그녀를 치켜세웠고, Y콤비네이터의 샘 알트만 대표는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자 "일반적인 편파보도"라며 트윗에 올리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 팀 드레이퍼는 딸이 홈즈와 동창이었는데 홈즈를 가리키며 "보기 드물게 에너지 넘치며 명민한 인물"이라며 칭찬했고, 그러는 사이 홈즈의 테라노스는 기업가치가 90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9조 6천억원까지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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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합리적 의심으로 그녀의 진실된 모습을 알아차린 이들 또한 있었다. 그 시작은 뉴요커의 기자였다.
뉴요커의 기자는 그녀의 성공담을 들으며 마지막으로 혈액진단 키트의 원리를 물었고, 홈즈는 "먼저 화학반응을 수행합니다. 이어 화학 반응이 발생하고 혈액과 진단키드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신호를 생성한 후 결과로 변환합니다. 이를 실험실 직원이 검토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이 답변에 뉴요커 기자는 "국가 기밀처럼 다뤄지는 기술에 대한 묘사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모호하다"며 지적했다.
그리고 두 번의 퓰리처상을 받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우는 이 문장을 보며 합리적 의심을 진전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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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캐리루우는 테라노스 전직 직원을 취재하여 테라노스에서 주장하는 기술은 많은 오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테스트를 위해 다른 회사의 기기를 사용했으며, 어떤 테스트 결과는 매우 부정확하다는 비판 기사를 실었다.
여기서 밝혀진 내용 중 놀라운 부분은 이 내부고발자는 테라노스의 투자자인 조지 슐트 전 국무장관의 손자 타일러 슐츠 였다.
1년 가까이 테라노스에서 일했던 그는 테라노스가 주장하는 기술이 미심쩍어 홈즈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너와 이런 논쟁을 벌이는 데 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는 니가 단지 조지 슐츠의 손자이기 때문"이라며 그의 의견을 묵살했고,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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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와 검증을 통해 사기를 알아차린 투자자도 있었다. 구글벤처스의 빌 마리스는 2013년 테라노스와 투자 미팅을 했지만 어떤 기술정보도 제공받지 못했고, 이에 직접 이 혈액진단 키트로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 기술을 체험했다. 그런데 이건 피 몇방울이 아니라 주사기로 결국 혈액을 뽑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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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는 결국 '성공할 때까지 속여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 번의 속임으로 본인의 회사가 활활 타오르자 투자자와 언론, 그 누구도 이 불을 끄고 싶지 않았다.
[ 원문자료 : 티타임즈 이해진 기자 "여자잡스 - 사기극의 공범들"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18031519017786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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